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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


함정                                                                                                                         김영하 목사 

     예전에 살았던 시카고에는 두 개의 큰 공항이 있습니다. 하나는 오헤어 공항이고, 다른 하나는 미드웨이 공항입니다. 약 5년 넘게 시카고 지역에 사는 동안 미드웨이 공항은 한 두 차례만 이용했습니다. 한국에 갈 때나 그 외의 지역으로 출타할 때면 항상 오헤어 공항을 이용 했습니다. 그래서 미드웨이 공항은 늘 저에게 생소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미드웨이 공항을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몇 차례에 드나들다보니 오헤어 공항보다 미드웨이 공항이 더 익숙한 곳이 되었고, 오헤어 공항은 오히려 생소한 곳이 되었 습니다. 물론, 한 동안 이용하지 않다보니, 지금은 두 공항 모두 이제는 생소한 곳이 되었습니 다. 

     생소한 곳이 익숙한 곳이 되고, 익숙한 곳이 생소한 곳이 되는 데는 얼마나 자주 이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디 장소 뿐이겠습니까? 도구나 연장도 얼마나 자주 사용하느냐에 따라 익숙한 연장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익숙함의 문제에는 상반된 두 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익숙하기 때문에 문제가 문제로 보이지 않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익숙하기 때문에 좋은 점이 좋은 점으로 보이지 않는 경우입니다. 사용하기에 버거운 연장이었는데, 자꾸 쓰다보니 익숙해져서 쓰기에 괜찮다 고 여겨지는 경우가 있고, 장점이 많아 사용하기에 편한 연장이었는데, 자꾸 쓰다보니 그 장점을 당연하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참 특이하고 이상한 사람인데, 자주 만나다보니 그 특이함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경우가 있고, 장점이 많고 참 좋은 사람인데, 너무 익숙하고 친하다보니 그 장점과 좋은 면이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경우입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익숙함으로 인해, 문제가 문제로 안보이고, 장점이 장점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그런 익숙함은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낫습니다. 당연히 보여야 할 것이 보이지 않고, 당연히 깨달아져야 할 것이 깨달아지지 않는다면, 눈은 뜨고 있 는데 보지 못하는 경우이고, 생각은 하는것 같은데 두뇌 회전이 안되는 것과 비슷한 경우입니 다. 간단히 말하면, 잠이 든 경우입니다. 

     따라서 익숙함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폐해(弊害)는 우리를 영적으로 잠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잠들어 있는 당사자는 전혀 잠들어 있지 않다고 생각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 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2:4-5)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에 회개하여 “처음 행위”을 가져야 한다는 이 말씀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익숙함의 문제에 빠져 문제를 문제로 보지 못하고, 장점을 장점으로 보지 못하는 입장에 있으니 “깨어나라”는 말씀입니다. 

     전후 문맥으로 볼 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교회는 에베소 교회였습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는 악하고 거짓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고,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게으르지 않았으며, 항상 인내하는 교회였습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의 이런 좋은 점들을 잘 알고 있다고 하셨 습니다(계2:2-3).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처음 사랑”을 버린 교회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래서 “처음 행위를 다시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바꿔 말하면, 겉으로 볼 때는 아무렇지 않게 보이고, 부지런하고, 인내하고, 뭔가 열심을 내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익숙함에 빠져 고쳐야 할 문제들을 분별하여 고치지 않고, 장점을 더 살려 개발하지 않는다면, 잠자는 교회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에 적용시키기 이전에, 우리는 이 문제를 우리 자신에게 먼저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주일을 지키고, 교회의 여러가지 일에 충성하는 것처럼 보여도, 얼마 든지 영적으로 잠들 수 있는 것이 우리 자신이라는 말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도 혹시 익숙함의 함정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혹시 그 익숙함의 함정에 빠져 있다는 자체도 깨닫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벌써 1월 말입니다. 2024년의 남은 시간들 동안, 아니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날까지, 매일 영적으로 깨어 새로운 하루 하루를 만들어가시는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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